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차 피트나 (문단 편집) == 결론 == * '''주바이르 칼리파조의 멸망 요인''' 압둘라 빈 앗 주바이르의 반란은 무슬림 원로들에게 있어 초기 정통 칼리파들의 이상을 복원하는 이상주의적인 운동이었다. 일부 지지자들은 그를 '''마흐디'''로 추앙하며 메디나에서 메카의 카바로 피신한 것을 예언자 무함마드의 '''[[히즈라]]'''와 비견하기도 했다. 시리아를 포함한 대다수의 지역에서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바이르 왕조가 비교적 쉽게 무너진 이유는 압둘라의 칼리파위를 인정한 세력은 많았지만, 대부분 명목상의 지지에 그쳤고, 이들을 단일 체제하에 통합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684년 우마이야 칼리파조가 붕괴 직전의 위기에 봉착했음에도 그들의 본거지인 시리아로 진격하지 않고 내부 결속에만 치중한 것도 조기에 대내전에서 승리할 기회를 날려버린 우유부단함이었다. 결정적으로 아라비아 반도와 이란에서 준동한 카와리지파 때문에 총독들 간의 교통로가 단절되었고, 결국 우마이야 칼리파조에게 각개 격파당하게 되었다. * '''우마이야 칼리파조의 중앙집권화''' 기나긴 대내전을 승리로 귀결시킨 우마이야 왕조는 이슬람권 전역에 대한 지배력을 회복했고, 칼리파 세습제를 정착시켰다. 또한 [[아브드 알 말리크]]는 기존 로마/사산 조의 화폐를 대신하는 디나르 화를 발행하고, 친족들을 고위직에 임명했으며, 아랍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는 등 대제국의 중앙집권화에 나섰다. 지방에 있어서는 이라크와 호라산을 중심으로 왕조에 충성하는 시리아 병력을 주둔시켰으며, 초기 이슬람 정복을 이끈 병사들의 후예들에게 주어지던 연금 등의 특권을 폐지하고, 현직 병사들에 대한 고정된 녹봉을 지급했다. 이로써 쿠파와 바스라를 중심으로 한 [[사하바]] 세력이 약화되었고, 우마이야 군대의 정예화로 이어졌다. 이후 우마이야군은 692년 세바스토폴리스 전투, 698년 [[카르타고]] 함락, 703년 타바라카 전투, 709년 [[부하라]] 함락, 711년 [[신드]]와 이베리아 반도 정복 등 연이어 승리하며 7세기 중반 이후, 재차 [[이슬람 정복]]에 나서며 우마이야 칼리파조의 최전성기를 열었다. * '''아랍 부족주의의 심화''' 한편 제2차 피트나는 중세부터 근대까지 시리아와 자지라(메소포타미아 북부) 지방에서 지속된 북부 아랍(카이스 = 무다르)과 남부 아랍(예메니 = 칼브) 부족들 간의 분쟁을 야기했다. 마르즈 라히트 전투에서 시작된 분열은 카이스 부족이 결국 우마이야 왕조에 복속하며 일단락 되는 듯 했지만, 그 후 칼리파의 중재 시도에도 불구하고 상호간 보복이 이어졌다. 결국 740년대 우마이야 왕조의 내전때 각자가 다른 왕공들을 지지하며 양측의 분쟁은 재발했고, 우마이야-아바스 교체기인 제3차 피트나의 도화선 중 하나가 되어 우마이야 왕조의 멸망에 기여했다. * '''이라크의 불만과 쉬아 / 마왈리 세력의 조직화''' 시리아와 자지라 외에 이라크 지역은 702년에 들어 평정되긴 했지만, 시리아군의 주둔에 대한 반발은 여전했고 세습적인 기득권을 상실한 쿠파의 귀족들은 반란이 일어날 때마다 그에 동조할 정도였다. 740년 자이디 반란을 시작으로 이라크에서는 끊임없이 병란이 일었고, 결국 749년 아바스 가문의 앗 사파흐가 쿠파에 입성하여 칼리파에 즉위하면서 우마이야 왕조의 지배가 종식되었다. 한편 [[카르발라 참극]]과 타와빈('참회자들'), 무크타르의 반란으로 조직화된 쉬아파 운동은 내전 후에도 이라크와 히자즈 지방에 잔존했다. 특히 무크타르에 의해 [[이슬람 정복]] 이후 처음으로 중임을 맡게 된 마왈리들은 '카이사니야', '하쉬미야' 운동을 거쳐 이맘직을 승계한 아바스 왕조를 지지했다. 그리고 마왈리 출신의 [[아부 무슬림]]은 호라산에서 아바시야 혁명을 이끌게 된다. 그외에 주바이르 왕조가 활용하고, 무크타르가 도입한 '''마흐디''' 개념은 향후 쉬아 이슬람에서 적극 활용되었다. [[분류:이슬람의 역사]][[분류:서아시아사]][[분류:우마이야 왕조]][[분류:내전]][[분류:7세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